각하라니? 여기가 무슨 일본이냐. 친일파 집안 답다. 피아노는 박근령이 쳤다는군.
쪽바리 보다 더 쪽바리 같은 망언을 쏟아내는 박근령 남편 답다. 부창부수가 딱 어울리는 말이다.
15살이나 어린 신동욱이 박근령보고 공주님이라 부른다는군. 켁켁...
박근령이 광복절을 앞두고 분노의 망언들을 쏟아 낸 일본에서의 인터뷰 영상. http://www.kkili.net/jp/25190
박근령. 일본의 천황, 국왕이라 불러야 한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이해해야 한다 http://www.kkili.net/people/24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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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능한 박정희 독재시절동안 우리는 북한보다도 못 살았다. 무슨 증거가 더 필요한가.
박정희가 이렇게 살도록 만들었다고... 개소리 같은 소릴하고 자빠졌네.
1979년 박정희가 죽고나서 청와대 금고에는 평소에 쓰고남은 현금이 무려 9억원이 있었다.
그 중에 박근혜가 은마아파트 31평짜리 33채 값의 돈 6억원을 가져갔다.
그 외, 영남대학교, 정수장학회 등...지금 박정희 자식들의 재산목록은 박정희가 숨겨두었던 것들 아니었던가.
박정희 스위스 은행 비자금. 월남참전수당 317억 달러(현 가치 634조원)를 꿀꺽.http://www.kkili.net/30034
이래도 박정희를 찬양하고 신격화 할 것인가.
수많은 젊은이들이 전쟁터에서 죽고 장애자가 되고 고엽제 후유증으로 평생을 힘들게 살고 있는데,
그들에게 주어야 할 돈들을 10%만 주고 90%를 박정희 비자금으로 스위스 은행에 넣어 두었다니 충격 그자체이다.
박정희때에는 노예생활과 같은 근로자들 피 빨아서 친일파와 기득권들 잘먹고 잘살던 시절이었다.
노예와 같은 근로자들에게는 가장 암울한 시기였으며 희망이 없던 시절이었다.
근로기준법을 정부가 앞장서서 지키지 않았고
근로기준법 지키라고 하는 근로자들은 전부 빨갱이로 몰아 잡아넣던 시절이 박정희 시절이었다.
쉬는 날도 거의 없이 하루 열 몇시간씩을 일하고 받는 월급으로 입에 풀칠하기 바빴고
저축이란 꿈도 못꾸던 노예같은 근로자들에게는 암울한 박정희 독재시절 이었다.
70년대, 국민학교 기성회비 몇백원도 못내어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다니지 못한 친구들이 정말 수두룩 했다.
지금 50대중반 이상들은 다 알것이다. 일을 하면서도 회비 낼 돈이 없을만큼 그렇게 힘들게 살았었던 70년대였다.
근데, 박정희가 이렇게 살도록 만들었다고 개소리 같은 소릴하고 자빠진 인간들이 많다. 그 시절에 우주에서 살다 왔나.
전두환이 말하길... 대통령이 되고나서 제일 먼저 파악해보니 나라경제가 엉망진창 밑바닥 수준 이었다고 회고했다.